밥통에 관한 짧은 일기 2006 Jan. 7, Jeongwoo Lee
지난 연말, 대전 모연구소에서 일주일간 강의를 해주면 비행기와 숙박료를 제공한다고 해서, 오랫만에 모국을 볼 기회라 생각하고 선뜻 응했다. 한국의 급성장으로 미국에 대한 상대적 위상이 많이 달라지고 일부는 반전되기까지 한 일은 뉴스를 통해서도 알고 있었다. 식사문화에만 국한해 보더라도, 얼마전 교내급식부실을 카메라고발 한다며 보여준 도시락사진은, 여기 기준에선, 그림의 떡이였다. 맛과 영양이 다 뛰어나 보였고 사실상 부실한 것이라곤 가격뿐이였다. 2-3배 가격에도 잘 팔릴 것이다. 그 것이 부실도시락이라면 우리 도시락은 뭐란 말인가. 막상 현장에 가보니 충격은 더 했다. 언제 어디서라도 먹고 대화하며 즐길수 있는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부러웠다. 24시간 오픈식당은 말 그대로 이십-사 시간이였고, 대부분 뛰어난 건강식이였다. 아마 조선시대 전통같은 데 연구비에 회식비가 배정되있었다. 그래서 저녁때면 팀장에서부터 학생 및 가족까지 매우 훌륭한 식당에 모여 먹고, 이야기하고, 서로 허물없이 대하고 헤어질 때면 차로 데려다 주는데, 그 화목한 모습을 보니 감동 받을 수 밖에 없었다. 몇년전 일본에서 어떤 한국드라마가 대성공을 거둔 원인이 그 사회에서 인간성, 순수성이 오랫동안 잊혀졌기 때문이라 하던데 이젠 충분히 동감이 되었다.
그러한 부러움은 곧 걱정으로 바뀌었다. 이제 한두 시간 후면 그 곳의 학생 하나가 유학차 이 곳에 오게 되어 있었다. 과연 저렇게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에서 자란 학생을 범죄도 많고 식당인프라가 취약한 이 도시에 데려다 놓고 맨날 개인주의, 이기주의, 새치기, 가로치기 등을 가르켜야하는데, 그럴 때마다 날 무엇으로 보겠는 가. 사실 몇년전에도 순진한 한국학생 하나를 데려와 그러한 문화적 차이로 애먹은 경험이 있어 더욱 걱정이 되었다.
이번에 유학오는 학생은 ‘홍이’고, 저번에 왔다 고생한 학생은 ‘봉군’이다. 둘 다 신앙심이 깊고 착하다는 공통점이 있었고, 차이점으로는 봉군은 지극히 내성적인 반면, 홍이는 말을 잘 한다. 내 입장에서 보면 말 없는 봉군의 행동이 너무 답답하여 여러차례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. 그러나 봉군의 입장에서는 한국에서의 기대치와 너무 달라 억울했을 수도 있었다. 앞으로 홍이를 관찰해보면 혹시나 당시 봉군의 애환을 알게될 까 하여 다음과 같이 일기를 일주일 가량쓰게 되었다.